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2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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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작가는 왜 쓰는가. 작가는 작가로서 어떤 책무가 있어서 밤에 불을 밝히는가. 잠을 설치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원고지 앞에서 끙끙거리는 작가들은 가끔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사는가.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일 수 있다. 시인 정호승(鄭浩承)은 ‘시를 쓰지 않고 살았더라면 인간으로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라고 했다. ‘왜 시를 쓰는가’라는 문제는 ‘왜 사는가’라는 문제와도 같다고 했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써 시를 써 온 것은 아닐까….”

다음은 작가 한창훈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하는 말이다.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詩)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중심만, 권력만, 웃는 것만, 달콤한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데에서 작가의 글쓰기는 출발한다. 왜 쓰는가. 이에 답하지 못한다면 작가가 아니다. 기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 겸 기자였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고백을 들어 보자.

‘1984’와 ‘동물농장’을 쓴 치열한 작가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그런 따위의 욕구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게 하는 힘을 네 가지 욕구로 꼽는다. ‘순전한 이기심’에 뒤이은 제2, 제3의 동기는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이다.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주는 묘미,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다. ‘역사적 충동’은 기록 욕망이다. 사물을 있는 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보존하려는 욕구다.

마지막 네 번째 욕구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다. 정치와 예술의 분리 담론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오웰은 말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생존이야말로 그 자체로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가 운명할 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질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글이 역사의 장벽을 무너뜨리기에는 힘이 벅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과연 나는 나의 펜을 내려놓고 절망만 할 것인가.

다음은 고은(高銀)의 시 한 구절이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1970년대에 ‘민중시인’으로 변신한 고은은 통일 지향의 문학이 자신이 추구해야 할 절대 가치라는 확신에 도달한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어조로 이념의 절대성을 결정하고 있는 시가 바로 ‘화살’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절대적 가치로 한국문단의 모퉁이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일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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