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백’과 ‘통계의 거짓말’
‘이구백’과 ‘통계의 거짓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5.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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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낸 캐나다의 컨설턴트 어니 J 젤렌스키는 죽어라 일만 하는 것보다는 실업자가 더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논리는 단순하다.

딱 한 번 주어지는 인생을 마음껏 쉬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막연히 미래를 위해 힘겹게 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다. 가능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 자신도 일주일에 나흘만 일한다고 했다.

그렇게만 살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만 대다수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아주 잘 사는 집이라면 모를까 대학을 졸업하고 한두 해 ‘쉬는 것’도 쉽지 않다. 기껏 가르쳐 놨더니 백수(白手)로 허송세월하느냐는 눈총도 그렇고, 스스로 못견뎌 하기 십상이다. 주변에선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아무데나 들어가라고 권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른 바 ‘청백전’, 청년 백수전성시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정부(통계청)가 지난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제주지역 실업률은 1.5%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3% 떨어졌다고 한다. (본지 5월 17일자)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일본의 실업률 2.4%보다도 낮다. 올해 4월 대학을 졸업한 일본 대졸자의 취업률은 무려 98%를 기록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우리 청년들에게 ‘완전고용’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실업률 통계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앞에도 ‘백수’, 뒤에도 ‘백수’들이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시대를 넘어 ‘이구백’(이십대 90%가 백수) 세상이라고 한다.

만성적인 취업난에 청년, 장년, 노년 할 것 없이 일자리를 못 구해 놀고 있는 ‘백수’들이 허다한데, 통계는 실업률이 1.5%고 지난해보다 줄고 있다하니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통계의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것은 입이 아프게 지적돼왔다.

실업률 1.5%는 일자리가 없어 노는 ‘백수’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주는 실업자가 없는 ‘고용 천국’.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라 인력 부족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지자체나 일자리 만들기 대책회의를 계속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다.

한국의 고용통계 방식에는 실업자도 아니고 취업자도 아닌 사람이 있다. 이를 비경제활동인구라고 한다. 일을 할 수 없는 사람과 일을 할 수 있지만 구직이나 경제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을 비경제활동인구라고 하고 이를 실업자 통계에서 빼고있다.

여기에는 가정주부는 물론이고 구직을 포기해 ‘그냥 쉬는 사람’과 취업준비생, 공무원시험 준비생, 공기업 준비생, 연로자, 종교인 등이 다 포함된다.

이들이 실제 취업을 하지 않는 상태임에도 실업자 통계에 빼는 바람에 체감 실업률과 수치상의 실업률 사이에 괴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업자 축에도 못 끼는 우리 ‘백수’들은 실업자가 더 행복하단 말에 울고 정부 통계에 또 한번 더 운다. 말이 좋아 ‘쉬는 사람’이다.

정부 통계대로 실업자가 없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은가.

청년이건 장년이건 집에서 ‘쉬는 사람들’을 실업자에 포함한다면 제주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20%에 육박할 지도 모른다.

잘못된 통계는 문제 파악은 물론 심각성을 분별하기 어렵게 한다. 정책의 우선 순위를 가리는 데도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실상을 왜곡하면서 제대로 된 실업자 해결책을 궁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실업률 통계는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

통계의 일관성 유지와 국제적인 비교를 위해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다면 국민 피부에 와닿고 정책에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보조지표 개발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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